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금치 전투 (문단 편집) == 전개 == [[공주시|공주]]로 진격한 동학 농민군은 공주 주변에서 관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동학 농민군은 맹렬하게 관군을 공격하여 관군이 살짝 후퇴한 사이 기습적으로 이인을 공격, 점령하여 공주 점령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한다. 한편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 육군은 우금치의 우측에 이두황의 부대를 배치했고, 좌측에는 이규태의 부대를 배치했다. 그리고 우금치 최고봉인 견준봉에는 일본 육군 200명을 배치했다. 그리고 전날 이인 전투에서 패한 군사를 이두황의 부대와 견준봉의 일본 육군 부대 사이에 배치했고, 이범호의 정예 교도 중대 350명을 이규태의 부대에 배치하여 전력을 증강했다. 우금치를 공격하기 시작한 동학 농민군은 우선 우금치 고개의 양쪽 능선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는 관군이 배치되지 않았기에, 농민군은 손쉽게 능선을 점령한다. 그리고 관군-일본군 방어선에 교란 공격을 시도했지만, 관군과 일본 육군은 최대한 사격을 자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양 능선을 점령한 농민군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방어선에 밀집 대형으로 돌격했다. 정오쯤 되어 동학 농민군의 주력은 방어선 공격에 거의 투입되었고 이에 맞서 관군의 개틀링 기관총과 크루프제 야포가 불을 뿜었다. 막강한 화력에 농민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동학 농민군은 50회에 가까운 공세를 퍼부었지만 관군의 막강한 화력 앞에 농민군은 쓸려나갈 뿐이었다. 결국 동학 농민군은 [[공세종말점]]에 다다라 더 이상 공세를 취할 수 없게 되었다. 하술하듯 관군과 일본군은 먼 거리에서 사격을 하는데도 동학 농민군에게 연달아 타격을 주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무기부터가 동학 농민군의 화승총보다 장거리 사격과 연속 사격이 가능한 최신식 소총들인 데다, 기존 밀집 대형과 달리 산개 대형과 엎드리는 자세/앉은 자세를 이용해 상대의 사격으로 받는 피해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돌격이 실패하자 전봉준은 우금치 계곡을 크게 우회하여 관군을 측면 공격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농민군은 우금치 계곡을 우회하여 관군과 싸워 두리봉을 점령하고 공주로 진격하지만, 매복한 관군에 패하고 퇴로가 막혀 관군에게 공격당하다가 흩어져서 농민군 본대와 합류하지 못했다. 우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농민군은 3,000명에 불과했다. 이에 농민군은 우금치에서 퇴각함으로써 우금치 전투는 동학농민군의 패배로 끝났다. '전투'라고 불러주긴 하지만 실제론 농민군 측에서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 해도 될 정도로 압도적인 패배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